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시라크 원자로 공습 (문단 편집) == 배경 == 이라크는 [[사담 후세인]]의 주도 아래 1975년~1976년에 걸쳐 [[프랑스]]와 [[이탈리아]]로부터 각각 연구용 원자로, 핵연료 재처리 시설 등을 구매하여 바그다드에서 남동쪽으로 17km 떨어진 곳에 핵시설 단지를 건설하고 있었다. 프랑스는 이미 1950년대에도 [[미국]]과 [[소련]]에 의해 무기 금수조치가 내려진 이스라엘에 핵무기 연구용 원자로를 제공하고 공동으로 핵무기를 개발한 바 있으며[* 영국과 프랑스가 수에즈에 군대를 보내고 점령할 명분을 만들기 위해 이집트를 침공해 줄 것을 요구했다.] 1973년 1차 [[석유 파동]] 후 안정적 석유 공급처 확보가 절실한 상황에서 사담 후세인이 저렴한 가격에 장기간의 석유 공급을 조건으로 원자로 판매를 요청하자 이를 받아들였다. 대량의 무기 판매처를 확보하는 측면도 있었으며 이탈리아도 프랑스와 같은 이유로 핵연료 재처리 시설 판매를 승인했다. 당시 프랑스가 제공한 연구용 원자로의 명칭은 '[[오시리스]]'(Osiris)였는데[* 묘하게도 [[이집트 신화]]에 나오는 죽음의 신의 이름과도 같다. 핵무기의 이미지와 일맥상통하는 대목.] 프랑스는 이라크에 제공할 원자로에 오시리스와 '이라크'(Iraq)를 합친 '오시라크'(Osirak)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연구용 원자로는 프랑스 엔지니어 이브 지라드가 무기 제작용으로 사용할 수 없도록 특별히 설계한 원자로였고[*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양의 플로토늄을 모으려면 수십년이 걸리도록 제작되었다.] 프랑스는 이를 근거로 평화적 연구목적뿐이라며 판매를 강행했다. || [[파일:external/www.angelfire.com/1.jpg|width=100%]] || || 건설 당시의 오시라크 원자로 || 하지만 이란과 이스라엘은 진작부터 이라크의 원자로 도입, 건설이 핵무기 개발을 목적으로 한 것이라고 의심했다. 만약 프랑스의 주장대로 핵무기를 만드는 데 직접 사용되지 못하더라도 이라크가 핵무기 제작을 위한 모든 기술과 인력을 얻게 되는 데다 이미 [[인도]]가 캐나다에서 건설해 준 연구용 원자로(CIRUS)를 이용해 핵무기를 개발한 사례가 있었다. 애초에 이스라엘도 프랑스에서 지어준 원자로를 이용해 핵무기를 개발한 것이라서 프랑스의 오시라크 원자로 건설이 이라크의 핵무기 개발로 이어질 것임을 누구보다도 이스라엘 본인들이 가장 잘 알았을 것이다. 게다가 프랑스는 이스라엘의 저농축 핵연료 사용 요구를 거절하고 무기급 고농축 우라늄(93%) 72kg의 판매를 강행했으며 특히 이라크가 해당 원자로의 지하에 플루토늄 생산을 위한 핵연료 재처리 시설을 건설하고 이들 시설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상시 사찰, 감시 대상에서 제외시키려고 하자 이라크의 핵개발에 대한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이스라엘은 1979년 프랑스에서 제작 중이던 오시라크 원자로 코어를 폭탄 테러로 파괴하고 1980년에는 이라크의 핵 프로그램 책임자인 아야 엘 마샤드[* 이집트 국적의 핵물리학자.]를 파리의 호텔에서 살해했지만[* 현지인 여성을 이용해 호텔로 유인한 뒤 칼로 살해하였다. 현지인 여성은 입막음 용도였는지 사고였는지 보복이었지는 불명이나 며칠 후 차에 치여 사망했다.] 이라크의 원자로 도입을 몇 개월 늦출 뿐 막을 수는 없었다. 이에 이스라엘과 이란은 오시라크 원자로를 직접 폭격해 무력화하는 군사작전에 나서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